영국의 팬케이크 축제는 단순한 음식 행사가 아니다.
매년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화요일에 맞춰 열리는 이 축제는 천 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종교적, 문화적 행사로, 영국 전역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특히 런던과 올니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이 날을 맞아, 모두가 달리고, 뒤집고, 웃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팬케이크를 손에 들고 거리 위를 질주하는 이 놀라운 축제는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표적인 기묘한 축제 중 하나다.
팬케이크 데이는 본래 사순절 시작 전 기독교 신자들이 금식을 준비하며 기름, 계란, 우유 등의 식재료를 소진하던 날에서 유래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 재료들로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으며 고기 없는 날들을 준비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며 축제의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제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지역 공동체의 유쾌한 전통으로 자리 잡아,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심지어 정치인과 연예인들도 팬케이크를 들고 거리에 나선다.
축제 당일, 곳곳에서 팬케이크 레이스가 열리고, 참가자들은 앞치마를 두른 채 프라이팬을 들고 팬케이크를 공중으로 던졌다 받으며 전력을 다해 달린다. 관중들은 열광하고, 팬케이크는 하늘을 가르며 날고, 거리 전체는 웃음과 활기로 가득하다.
팬케이크 레이스 웃음과 스릴이 가득한 명장면들
축제의 백미는 단연 팬케이크 레이스다. 수많은 팬케이크 레이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버킹엄궁 근처에서 열리는 정치인 레이스와 올니 마을의 전통 팬케이크 레이스다. 특히 올니에서는 1445년부터 이어진 전통 경기가 열리며, 이 마을이 ‘세계 팬케이크 레이스의 발상지’로 불리는 이유다.
올니의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팬케이크를 만들던 여인이 교회 종소리를 듣고 프라이팬을 든 채로 미사에 뛰어갔고, 이것이 오늘날의 팬케이크 레이스로 이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참가자들은 그녀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스카프를 머리에 묶은 채 경주에 참가한다. 프라이팬에 팬케이크를 담은 상태로 지정된 코스를 달리며, 경기 중 반드시 팬케이크를 최소 3번 이상 공중에서 뒤집는 것이 룰이다.
런던에서는 다양한 기업이나 공공기관, 방송사들이 팀을 이뤄 코스튬 팬케이크 레이스에 참가한다. 영국의회 직원들과 기자들이 슈트를 입고 뛰거나, 유명 셰프들이 팬케이크를 들고 묘기를 부리며 달리는 모습은 매년 뉴스와 SNS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팬케이크가 땅에 떨어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도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웃음과 응원이 쏟아진다. 팬케이크는 단지 경주 도구일 뿐 아니라, 이 축제 전체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재치와 유머의 상징이기도 하다.
축제 속 팬케이크,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팬케이크 그 자체다. 축제 당일, 영국 전역의 거리에서는 수많은 팬케이크 부스와 이동식 간이 주방이 설치되어 다양한 스타일의 팬케이크가 즉석에서 구워진다. 영국식 팬케이크는 일반적으로 크레페보다 조금 더 얇고, 바삭한 테두리와 쫀득한 중앙 부분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설탕과 레몬즙을 뿌린 팬케이크가 가장 인기가 많지만, 점점 다양한 토핑과 조합이 등장하고 있다. 딸기잼, 누텔라, 생크림, 메이플 시럽, 바나나, 그리고 최근엔 비건 옵션까지 포함되어 채식주의자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팬케이크 먹기 대회도 열리는데, 제한 시간 내에 몇 장의 팬케이크를 먹는지 겨루는 이 경기 또한 웃음과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일부 축제장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손수 만든 팬케이크를 서로 나눠 먹으며 공동 식탁 문화를 실천하기도 한다. 특히 노년층이나 이웃들과의 교류가 줄어든 현대 도시 사회에서, 이러한 공유식은 매우 특별하고 따뜻한 의미를 지닌다. 팬케이크 한 장에 담긴 정성과 나눔의 정신이 축제의 진짜 맛을 완성하는 셈이다.
팬케이크 축제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벤트로 끝나지 않는다. 일상의 긴장과 피로를 잠시 내려놓고, 주변 사람들과 웃으며 뛰고 먹고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축제는 도시의 숨통을 틔워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정장을 입은 정치인도,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도, 앞치마 두른 주민도 모두가 같은 팬케이크를 손에 들고 함께 달리는 모습은 유쾌한 평등의 장을 만든다.
또한, 이 축제를 통해 우리는 작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커다란 전통이 되었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단순히 팬케이크를 먹던 풍습이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오늘날 수천 명이 함께 참여하는 거리 축제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문화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최근에는 런던의 팬케이크 레이스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거나, 지역별 팬케이크 콘테스트를 SNS에서 전파하는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새로운 형태의 팬케이크 축제로도 확장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를 새로운 놀이로 받아들이고, 나이든 세대는 여전히 전통의 맥락을 이어간다.
이 축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브릿지이자, 세대를 초월한 하나의 공동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
한 장의 팬케이크가 던지는 유쾌한 메시지
단순한 음식이 도시를 달리게 만들고, 사람을 웃게 만들며, 전통을 이어주는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축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언제인가 당신도 런던 거리 한복판에서 팬케이크를 던지며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팬케이크 축제는 단지 하루짜리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축제를 준비하고 즐기는 과정 속에서 지역 주민들은 서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유대감을 돈독히 한다. 거리에서 우연히 옆 사람과 눈이 마주쳐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팬케이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공감의 매개체가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팬케이크를 뒤집는 건, 어쩌면 우리도 일상을 잠시 뒤집어보라는 신호인지도 몰라요.
그 말처럼, 팬케이크 축제는 우리에게 작은 용기와 여유, 그리고 유쾌한 전환의 순간을 선물한다.
가끔은 프라이팬을 들고 거리를 달리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의 방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