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면 떠오르는 건 대개 맥주 축제, 바이에른의 고성, 질서정연한 도시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북부 해안의 작은 마을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엉뚱하고도 유쾌한 광경이 펼쳐진다.
바로 바다의 밀물과 썰물로 생긴 넓은 갯벌 위에서, 사람들끼리 진흙 범벅이 되어 공을 차는 진흙 축구 대회가 그것이다.
심지어 참가자 중 일부는 정장을 차려입거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경기에 임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축제가 생겨났고, 사람들은 이토록 열정적으로 진흙 속을 누비는 걸까?
갯벌 위에 펼쳐지는 열기 진흙 축구 대회의 시작
이 기상천외한 축제는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 홀슈타슈 주의 브룬스뷔텔이라는 작은 항구 도시에서 열린다.
이 축제는 2004년 한 지역 방송국 기자가 갯벌 보존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자선 이벤트로, 그 취지에 공감한 지역 주민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해마다 점점 커져갔다.
초기에는 단순한 진흙축구 경기만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갯벌 농구, 진흙 씨름, 수레 끌기, 진흙 달리기 등 다양한 ‘진흙 스포츠’가 함께 열리는 거대한 진흙 올림픽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북해 해안의 특성상, 축제는 썰물이 한창일 때 잠시 드러나는 갯벌 위에서 빠르게 진행되며, 이는 경기에 일종의 스릴을 더해준다. 물이 다시 차오르기 전까지 펼쳐지는 짧고 굵은 진흙의 향연은 하루를 온전히 진흙과 웃음에 맡기게 만드는 경험이다.
경기 규칙은 자유, 복장은 더 자유
진흙 축구 대회의 규칙은 일반적인 축구 경기와 비슷하지만, 룰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심으로 더럽혀졌는가다.
골대는 단순한 막대기 몇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판도 룰보다 유쾌한 분위기를 우선시한다. 볼이 굴러가기보다는 진흙에 박혀 멈추는 일이 더 많고, 미끄러지며 쓰러지는 장면은 경기 내내 반복된다.
놀라운 건 참가자들의 복장이다. 정장을 입은 회사원, 턱시도 차림의 신랑, 심지어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즐기자는 정신을 상징한다.
또한 팀마다 이름과 유니폼, 구호까지 정해져 있어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하나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관중들도 축제의 일부다. 경기장 주변에는 맥주와 소시지를 파는 푸드트럭, 지역 밴드의 공연, 가족 단위 피크닉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진흙 경기 중간중간 가장 멋지게 넘어지기, 가장 창의적인 복장상 같은 코믹 시상식도 진행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지는 축제 분위기는, 마치 축구장과 코미디 쇼, 펍, 놀이터가 갯벌 위에 함께 놓인 듯한 이색적인 공간을 탄생시킨다.
웃음 뒤에 숨은 진지함 갯벌 보존을 위한 축제
이토록 유쾌한 분위기의 이 축제에는 사실 환경에 대한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진흙 축구 대회의 수익금 전액은 갯벌 보존 기금으로 기부된다. 이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최대 규모의 조간대 생태계로, 수많은 철새와 바닷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축제를 주최하는 시민단체는 사람들이 진흙탕에서 뛰어노는 경험을 통해 갯벌 생태계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래서 경기 외에도 갯벌 퀴즈, 환경 포럼, 해양 쓰레기 줍기 캠페인 등이 함께 열려 축제를 찾는 이들에게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전한다.
한편, 참가자들은 경기장 입장 전 반드시 진흙 친화 복장을 갖추고, 화학 세제나 인공물 사용을 금지당한다. 경기 후에는 지정된 샤워 구역과 정화 시스템을 통해 진흙과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등 지속 가능한 축제 운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이 진흙탕 축제는 더럽게 놀되, 깨끗하게 남기자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진흙탕 한가운데서 땀을 흘리고, 옷은 엉망이 되고, 얼굴에 진흙이 잔뜩 묻은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해방감과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축구를 하는 게 아니다. 정장을 입고 진흙 위에서 실컷 넘어지고, 엉뚱하게 튕긴 공에 깔깔 웃고, 때로는 물웅덩이에 철퍼덕 빠지며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중이다.
경기장 밖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상에서는 실수하면 안 되고, 더럽혀지면 안 되잖아요. 근데 여기선 그게 미덕이에요. 가장 많이 구르고, 가장 많이 웃으면 이기는 거니까요.
그래서인지 진흙 축구 대회에 한 번 참여한 사람들은 해마다 돌아온다. 유럽 각국에서 모인 여행자들, 회사 단체, 친구들, 가족 단위 참가자들까지 매년 조금씩 더 넓은 진흙 가족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이 축제를 통해 깨닫는다. 때로는 포멀한 옷을 입고 진지한 얼굴로 진흙에 넘어져 보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통쾌하고 자유로운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정장을 입고 진흙에 몸을 던지는 축제.
그건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세상과 부딪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유쾌한 웃음 뒤에 담긴 이 깊은 메시지는 분명 진흙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그 진흙탕 속에는 사실 어른이 된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이 모두 들어 있다. 망가져도 괜찮다는 허락, 실수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자유, 그리고 웃음이 먼저인 삶의 태도. 참가자들은 경기가 끝난 뒤 진흙투성이가 된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없이 그런 감정을 나눈다. 어떤 이는 돌아가는 길에 말한다. 옷은 더러워졌지만, 마음은 깨끗해졌어요. 진흙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