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베리아 찬바람 속에서 피어난 환상의 도시
중국의 북동쪽,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도시 하얼빈.
이곳은 한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의 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추위 덕분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환상적인 축제가 열립니다. 바로 하얼빈 국제 얼음축제입니다.
1985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매년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약 두 달간 열리며, 100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겨울 축제 중 하나입니다. 특히 대표 행사장인 ‘빙설대세계는 무려 6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공간에 얼음으로 만든 궁전, 탑, 다리, 성당, 미끄럼틀이 조성되어 마치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듯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 나는 단숨에 동화 속 도시로 걸어 들어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빛나는 얼음 건축물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반짝이는 눈 결정들, 그리고 추위 속에서도 아이처럼 들뜬 사람들의 표정까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2. 얼음으로 만든 도시를 걷다 – 빙설대세계의 하루
하얼빈 국제 얼음축제의 중심지는 단연 ‘빙설대세계’입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얼음으로 만든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년 약 20만 입방미터의 송화강 얼음과 15만 입방미터의 눈이 축제 준비에 사용되며, 1000명 이상의 얼음 조각가와 예술가들이 수개월에 걸쳐 작업합니다.
얼음 궁전부터 성당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얼음 건축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제 건축물 크기의 얼음 궁전과 성당입니다.
중국 고대 건축 양식을 본뜬 거대한 얼음 성벽, 유럽식 고딕 양식의 성당 모형, 러시아풍 양파 돔까지,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가 얼음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밤이 되면 건축물 내부에 설치된 LED 조명이 빛을 발하며 온 세상이 몽환적인 분위기로 변합니다.
광장 중앙에는 수십 미터 높이의 ‘얼음탑’이 조성되는데, 매년 그 디자인이 달라지며 축제의 상징물 역할을 합니다. 어떤 해는 만리장성을 본뜬 장대한 구조였고, 또 다른 해는 중세 성을 모티프로 하기도 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도 얼음으로 되어 있어, 오를 때마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서늘함이 묘하게 짜릿합니다.
눈썰매, 아이스 슬라이드, 얼음 자전거 체험형 시설도 가득
관람뿐 아니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놀거리도 매우 풍부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거대한 얼음 미끄럼틀입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약 15~20미터 높이에서 출발하는 롱 슬라이드를 경험할 수 있는데, 얼음 위를 썰매나 고무 보트에 타고 내려오는 동안 추위도 잊게 됩니다.
또한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얼음 자전거 트랙, 눈싸움 경기장, 개썰매 체험, 얼음 조각 교실 등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손에 따뜻한 고구마나 당밀 사탕을 쥔 채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거나 눈 위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합니다.
축제의 뒤편, 얼음 조각가들의 땀과 손길
겉으로 보기에는 마법처럼 아름답고 차가운 도시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얼음 예술가들의 고된 노동과 정교한 손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하얼빈 지역의 얼음 조각가들은 대부분 수십 년 경력의 장인들입니다.
이들은 송화강에서 직접 얼음을 잘라내어 대형 트럭으로 운반한 후, 고무망치와 전기톱, 끌, 도끼를 이용해 얼음 블록을 다듬습니다. 작업은 매년 11월 말부터 시작되어, 12월 말까지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수백 개의 구조물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10시간 이상의 작업은 기본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얼음을 깎는 것이 아니라, 빛의 각도와 얼음의 결을 계산하여 예술적인 조형미를 구현합니다.
특히 야간 조명을 고려한 설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얼음 조각 하나에도 과학, 미술, 건축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들어갑니다.
일부 조각가들은 축제 종료 후에도 국제 얼음조각 대회에 참가하거나 해외 축제에 초청받을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하얼빈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얼음 예술계에서 일종의 브랜드로 통할 정도입니다.
3. 한겨울의 예술과 인간의 적응력 – 하얼빈 축제가 가진 의미
하얼빈 국제 얼음축제는 단순히 관광 산업을 위한 지역 행사가 아닙니다.
이 축제는 자연과 싸우지 않고 공존하려는 인간의 지혜, 혹한 속에서도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 그리고 문화와 경제를 연결한 성공적 모델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 축제의 또 다른 매력은 해가 진 뒤에 더 빛난다는 점입니다. 밤이 되면 얼음 건축물 내부에 설치된 수만 개의 LED 조명이 일제히 밝혀지며, 전체 공간이 형형색색의 빛으로 가득 찬 얼음 궁전으로 변합니다. 파란빛 성당, 보랏빛 궁전, 무지개빛 다리들이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반짝입니다. 특히 야경을 즐기며 천천히 얼음길을 걷는 경험은, 이 축제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선 겨울철 낭만과 예술의 정수임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하얼빈은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와 중국, 유럽 문화가 융합된 이질적 배경을 지닌 도시입니다.
1900년대 초반 러시아 철도가 개통되며 성장했고, 그 영향으로 도시 곳곳에 서양식 건축과 슬라브계 문화가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혼종성은 얼음축제의 건축물과 예술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며, 하얼빈만의 정체성 있는 겨울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축제를 통해 하얼빈은 매년 수십억 위안의 경제적 수익을 올리며, 호텔, 식음료, 교통, 지역 특산품 산업도 함께 활성화됩니다.
무엇보다도, 하얼빈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그 겨울을 즐기고 기념하는 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실용 정보 하얼빈 얼음축제 여행 준비 팁
복장 팁 내복+다운재킷+방한장갑+핫팩 필수 3겹 이상 레이어드 추천
교통 하얼빈 태평국제공항 이용 후 시내까지 약 40~60분 소요
주의 사항 스마트폰 배터리 급속 소모 미끄럼 방지 신발 착용 권장
마무리하며 얼음 속에서도 뜨거운 감동을 느끼다
하얼빈 국제 얼음축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혹독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탄생시킨 예술의 극치입니다.
한겨울의 숨 막히는 추위 속에서 얼음을 깎아내고, 그 위에 빛과 예술을 더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온 방문객들 사이에는 언어를 초월한 감탄이 흐릅니다.
어쩌면 하얼빈에서의 하루는 춥다는 감각보다
살아 있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되새기게 해주는 하루일지도 모릅니다.